파 조

파 조

파조(派祖)

 

시조(中始祖) 진용교위(進勇校尉) 언경(夫彦景)공을 이어, 2세조(二世祖)적순부위(迪順副尉) 득시(得時)공, 3세조(三世祖) 수의부위(修義副尉) 상종(尙宗)공으로 이어오다,  4세조(四世祖) 삼로(三老)공이 세종(世宗)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으며, 공(公)께서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내신 순흥후인(順興後人) 안공(安公) 득인(得仁)의 따님이신 숙인(淑人) 안(安)씨를 배위(配位)로 맞이하시어, 아들 형제(兄弟)를 두셨는데, 첫째 아들 5세조(五世祖) 유렴(有廉)공은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제주도를 지켰고, 공(公)의 아들 6세조 (六世祖) 어모장군(禦侮將軍) 세영(世榮)공께서는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지내신 양천후인(陽天後人)인 허공(許公) 선손(先孫)의 따님이신 숙인(淑人) 허(許)씨를 배위(配位)로 맞이하시어, 아들로 7세조(七世祖) 각(恪)공, 협(協)공, 열(悅)공, 신(愼)공, 벽(愊)공, 홍(弘)공, 봉(奉 ; 無傳)공 7형제를 두셨다. 그중 6형제가 제주 6파(濟州 六派)의 파조(派祖)가 되었으며, 삼로(三老)공의 둘째 아들 5세조 장사랑(將仕郎) 유성(有成)공은 육지(陸地)로 건너가 경기도(京畿道) 연천(蓮川)에 세거(世居)하여 유성공파(有成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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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세 통훈대부 삼로공묘

 

 

통훈대부(通訓大夫) 휘(諱) 삼로공(三老公;4세)의 묘갈명(墓碣銘)

 

이곳 영주영봉(瀛州靈峯)인 한라산의 중턱 동거문악(東巨文岳) 동록(東麓)에 유좌(酉坐)로 자리하시고 멀리 수평 너머로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지켜 보시면서 고이 쉬고 계신 분은 부씨 종족(夫氏 宗族)의 중시조(中始祖)이신 통훈 대부 휘 삼로공(通訓大夫 諱 三老公)이시다.

 

공(公)은 탁라(乇羅)를 함께 개국(開國)하신 삼성신인(三聖神人)의 한 분이신 부을라 왕시조(夫乙那 王始祖)의 후예(後裔)로서 휘 계량공(諱 繼良公)과 휘 을잉공(諱 乙仍公), 그리고 휘 일성공(諱 日誠公) 등의 뛰어난 혈통(血統)을 이어 받으셨으며 또 이런 선대(先代) 어른들보다 그 연대(年代)와 행상(行狀)에 관한 고증(考證)이 더욱 확실하기 때문에 후손들이 세보상(世譜上) 일세시조 (一世始祖)로봉대(奉戴)하고 있는 휘 언경공(諱 彦景公)의 4세손(四世孫)이 되시는 분이시다.

공(公)은 조선조(朝鮮朝) 세종(世宗) 32년< 경오(庚午) 1450년>에 탄생하시 고 중종(中宗) 27년 < 임진(壬辰) 1532년> 3월 11일에 서거(逝去) 하셨으니 향년(享年) 83세를 일기(一期)로 마침내 그 생애(生涯)를 마치셨다.

공(公)은 일찍이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내신 순흥후인(順興后人) 안공(安公) 휘 득인(諱 得仁)의 따님 숙인(淑人) 안씨(安氏)를 배위(配位)로 맞아 어모장군 (禦侮將軍)이 되신 장남 휘 유염공(諱 有廉公)과 장사랑(將仕郎)이 되신 차남 휘 유성공(諱 有成公)을 두셨다.

 

공(公)은 손자(孫子)로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내신 휘 세영공(諱 世榮公)과 종사랑 (從仕郎)을 지내신 휘 민홍공(諱 敏弘公)을 이자(二子)에서 각각 얻으셨다. 나아가 증손(曾孫)으로는 장손(長孫)에서 휘 각공(諱 恪公), 휘 협공(諱 恊公), 휘 열공(諱 悅公), 휘 신공(諱 愼公), 휘 벽공(諱 愊公), 휘 홍공(諱 弘公), 휘 봉공(諱 奉公)의 7남과 2녀를 얻으셨으며, 차손(次孫)에서는 휘 영조 공(諱 永祚公)을얻으셨다.

그러므로 비록 그 훗날 제주도(濟州島)를 여러 차례 침공(侵攻)해 온 외적(外敵)들을 맞아 향토수호(鄕土守護)를 위하여 불고가사(不顧家事)하고 헌신봉 공(獻身奉公)하신 역대(歷代)의 무장(武將) 조상님들 때문에 부씨 일족(夫氏 一族)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 이문(他 二門)에 비(比)하여 열세(劣勢)를 면 (免)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그들이 복수본관(複數本貫)과는 달리 순전(純全)히 제주(濟州)의 단본(單本)으로서 우리 종족(宗族)이 오늘날 25세(二五世)까지 면면(綿綿)히 이어졌고, 그 인구총수(人口總數) 또한 6천여를 헤아릴 정도(程度)로 번성(繁盛)되었음은 오로지 휘 삼노공(諱 三老公)의 은덕 (恩德)에 연원(淵源)하는 바임이 분명(分明)하다. 그런 고(故로) 후손(後孫)들이 공(公)을 숭상(崇尙)하여 백대지친(百代之親)이요 만지동근(萬枝同根)의 중시조 (中始祖)로서 부씨 가승(夫氏 家乘)의 뿌리를 깊이 내리신 분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當然)한 도리(道理)로서 추호(秋毫)의 지나침도 없다.

 

지난날에도 이미 공(公)의 후손(後孫)들 중에서 문무(文武)를 가릴 것 없이 출중(出衆)한 인재(人材)가 허다(許多)히 배출(輩出)되어 국내외(國內外)에서 널리 이름을 떨치고 가족(家族)을 빛낸바 적지 않았거니와, 앞으로는 더욱 국운(國運)과 민복(民福)이 신장발전(伸長發展)하여 감에 따라 후예(後裔)들이 보다 크고 무거운 소임(所任)을 분담(分擔)하고 겨레의 진운(進運)에 폭넓게 공헌(供獻)하게 것을 굳게 믿어 의심(疑心)치 않는다.

 

이러한 애정(哀情)에서 삼가 중시조 (中始祖) 영령(英靈)의 무궁(無窮)한 명복(冥福)과 배전(倍前)의 가호(加護)있으시기를 기원(祈願)하는 종중(宗中) 총의(總意)를 모아 감(敢)히 이 졸문(拙文)으로 적어 올린다.

 

서기 1984 년 갑자(甲子) 원단(元旦)

17세손 완혁(玩爀) 근식(謹識)

 

< 이 비문을 쓰신 분 소개 >

● 부완혁(夫玩爀; 1919~1984)

중시조 20세손이시며 장사랑(將仕郎)을 지내신 5세 휘 유성공(諱 有成公)파의 후손이시다,

학력 : 일제시 경성제국대학 법과 졸

약력 : 일제시고문행정과합격, 경북 선산,경산군수, 광복후고려대교수, 국무총리비서실장, 기획처물동계획국장, 조선일보주필, 사상계사장, 한국금융통화위원, 율산그룹회장, 한국육상연맹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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